
미스터리 영화는 보통 범인을 찾는 재미로 승부하는데, 과연 그것만으로 충분할까요? 저는 개봉을 앞둔 영화 <얼굴>을 보고 나서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40년 전 살해된 어머니의 진실을 추적하는 시각장애인 부자의 이야기라는 설정만 들었을 때는 전형적인 추적 스릴러를 예상했거든요.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니 사건보다 더 무서운 건 사람들의 시선이었습니다.
일반적인 미스터리와 달랐던 외모 편견의 무게
흔히 미스터리 영화는 범행 동기와 범인 추적에 집중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얼굴>은 처음부터 다른 방향을 보여줬습니다. 동환이라는 주인공이 백골로 발견된 어머니의 죽음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드러난 건 사건의 전말이 아니라, 어머니가 평생 '못생긴 여자'로만 기억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유산을 노리는 이모들은 어머니를 평생 외톨이였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어머니의 삶에 대해선 험담만 늘어놓더군요. 제가 특히 충격받았던 건 피복 공장 동료들조차 어머니의 외모부터 언급했다는 점입니다. 40년이나 지났는데도 그 사람의 인생보다 얼굴이 먼저 떠오른다는 게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 실감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영화에서 피해자는 미화되거나 동정의 대상으로 그려지기 마련인데, <얼굴>은 정반대였습니다. 어머니는 죽어서도 외모로 평가받고, 그 이미지 때문에 진실조차 제대로 밝혀지지 못할 뻔했습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우리가 일상에서 얼마나 쉽게 타인을 외모로 규정하는지 돌아보게 됐습니다. "사람은 외모가 다가 아니다"라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는 첫인상과 외모로 그 사람의 전부를 판단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요.
영화 속 사장 백주상은 겉으로는 천사 같았지만 실제로는 끔찍한 악행을 저질렀고, 어머니는 그걸 막으려다 희생당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백주상의 외면만 보고 그를 선인으로 기억했습니다.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았다는 마지막 반전은 어쩌면 진짜 정의가 뒤늦게라도 실현될 가능성을 보여주는 장치였지만, 저는 오히려 씁쓸했습니다.
박정민의 1인 2역이 보여준 시선의 폭력
많은 분들이 박정민 배우의 연기력을 인정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정말 다른 차원이었습니다. 시각장애인 아버지와 아들을 동시에 연기하면서 현대와 과거를 넘나드는 모습이 단순한 기술적 연기를 넘어섰습니다. 제가 느낀 건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상처와 죄책감이 한 인물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특히 아들 동환이 집요하게 과거를 파고드는 장면들에서는 단순한 진실 추적이 아니라, 어머니라는 존재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는 절박함이 느껴졌습니다. 시각장애인이라 어머니의 얼굴을 본 적 없는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를 기억하지 못하는 아들. 이 두 존재가 겹쳐지면
서 '얼굴'이라는 단어가 단순히 생김새가 아니라 타인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의미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영화는 명확한 악당을 설정하고 그를 응징하는 구조로 카타르시스를 주는데, <얼굴>은 그런 식의 해소를 거부했습니다. 진숙이라는 인물이 40년 전 어머니에게 못 할 짓을 했다고 고백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정작 더 무서운 건 그런 개별적 악행보다 사회 전체가 한 사람을 어떻게 기억하고 규정하는가였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영화는 보고 나서 마음이 편안해지기보다는 오래 생각하게 만듭니다. 저 역시 이 영화를 보면서 제가 누군가를 바라볼 때 가진 편견과 기준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 돌아봤습니다. 감독이 인간 내면의 추악함을 파고든다고 했는데, 정확히 그 지점을 건드린 작품이었습니다.
<얼굴>은 화려한 반전이나 큰 사건으로 승부하는 영화가 아닙니다. 대신 한 인간이 사회의 시선 속에서 어떻게 왜곡되고 기억되는지를 조용히 드러냅니다. 단순히 한 가족의 비극을 그린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가진 시선의 문제를 비추는 거울 같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적어도 한동안은 타인을 함부로 판단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게 될 겁니다.
참고: https://youtube.com/watch?v=HSm7fvMHe8E&si=xElDu-myPVF8QC2d